🎧 RM [RPWP] 앨범 듣기 pt.2 (길어요)

지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야성

2024.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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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랜디 서입니다.

9월의 끝에 인사 드립니다. 8월에 연락이 없었지요 ㅠㅠ 뒤늦게 사과 드립니다. 리뷰의 작성이 늦어지기도 했고, 저도 개인적인 일이 많아 무척 바빴어요. 다른 분들도 스트레스가 높을 시기 같아서 그냥 쉬었습니다. 제멋대로 운영 되는 뉴스레터입니다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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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pt.1 - 트랙 6부터 11까지

⭐ 앨범의 총평

RM [Right Place, Wrong Person] 앨범 듣기 pt.2

6. Groin

앨범의 후반전이 시작 됩니다. 전반전의 비트를 떠올려보면 하모니가 거의 없었습니다. 1번 트랙 Right People, Wrong Place, 2번 트랙 Nuts, 3번 트랙 out of love, 4번 트랙 Domodachi 모두 그랬지요. 제일 밑의 반주를 생각하면 거의 마이너 원코드, 많아봤자 투코드의 비기능화성(Nonfunctional harmony)이었어요. (이전에 방탄소년단의 ‘134340 (PLUTO)’를 리뷰하며 비기능화성을 설명한 적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그나마 재지한 5번 트랙 인털루드 역시 전통적인 코드 진행에서는 조금 벗어나있고요.

그리고 6번 트랙 Groin으로 들어갑니다. 30초 넘게 신스 오르간의 전주와 합창이 흐릅니다. 하모니가 거의 없었던 앨범에서 거의 처음으로 고전적인 의미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비기능화성 음악이 음악이 아니란 말은 아니지만요, 모던함에서 좀 더 전통적인 느낌으로 넘어간 걸 설명하려는 거라 이해해주세요) 이 전주는 전 트랙 ‘? (Interlude)’의 일부처럼 들리기도 해서, 트랙 확인은 않고 귀로만 앨범을 들으면 곡이 바뀐 건지 알기 힘들어요. 2번~3번 트랙과 비슷한 방식으로 접붙어있습니다. 그렇지만 5번의 소제목이 Interlude이기도 하고, 앞서 설명한 화성과 코드진행이 확 달라진 것 때문에, 분위기가 달라져서 후반전이라고 보았습니다.

드럼이 먼저 도움닫기를 하고 비트가 힘차게 들어옵니다. 앨범에서 처음으로 첫 소절부터 한국어 가사로 랩하는 알엠이 등장합니다. 귀를 집중 시킨 뒤 하는 첫 말이 이렇습니다: “세상엔 재수 없는 새끼가 많아.”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 더 깊숙이 충격을 전달할 법한 전개입니다. 알엠 역시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기에 이 부분이 더 솔직하게 느껴지도 하고요. 아무래도 외국어로는 더 심한 말을 해도 내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우회처럼 느껴지는 데가 있잖아요. 단어 자체는 심각한 욕설이어도, 해당 단어를 접한 맥락이 힙합 음악 같은 남의 나라 미디어였다면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미디어를 함께 본 사람들끼리 나누는 슬랭(slang)과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해요. 이 앨범 전체를 보아도 영어 욕이 워낙 많아요. 한국어가 모국어인 저에게는 그게 한국어 욕보다는 덜 노골적인 느낌을 줬어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는 또 달리 느껴졌겠죠. (슬립 디즈의 유튜브 리뷰에 함께 출연한 뮤지션 바넬 힐(Varnell Hill)이 이 점을 짚기도 했어요) 그런 외국어의 거리감 역시 작품의 구성에 포함을 시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 트랙들처럼 여전히 화자는 화가 나있고,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앞선 트랙들과 비교했을 때 자세가 좀 달라졌습니다. 미국 서부식 훵크에 가까운 비트는 삐딱하면서 엉뚱한 리듬을 짚습니다. 확실한 하모니가 생겨서 온통 어둡기만 했던 분위기에 색이 생겼고, 그래서 가시(可視)가 확보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뮤직비디오 속의 알엠은 헐렁한 아디다스 트레이닝복을 입고 거리를 걸어다니고 춤을 춥니다. 퍼포먼스로 유명한 방탄소년단의 멤버지만 각을 잡은 안무는 아니고, 그렇다고 제이홉의 스트릿댄스처럼 춤의 양식을 갖춘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어그적어그적 걷다가 아무 춤이나 춥니다. 4번 트랙 Domodachi (feat. Little Simz) 때와 같이 페나키(Pennaky)가 감독했습니다. 뮤직비디오 자체가 농담 같기도 하고, 함께 들리는 음악도 그런 성격이 더 강조됩니다. 빛나기보다는 구질구질하고, 그러면서 우스꽝스러운데, 음악만큼은 타이트하게 잘 만들어져있습니다.

대중음악 팟캐스트 방송 ‘앰플리파이드 팟캐스트(AMPLIFIED Podcast)’의 2024년 5월 22일 ‘얼터너티브 K팝, 바밍 타이거’ 편에서 호스트 유승균 PD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바밍타이거는 홍대 감성의 후예들이 각잡고 케이팝을 만들기로 한다면 나올 만한 결과물이다.’ 같은 방송의 다른 편에서 유승균 PD와 출연자 큰미미가 ‘홍대 감성’을 좀 더 풀어 이야기해보기도 했는데요, 간략히 옮기면 이렇습니다:

모자람의 미학에 집중하며, 줄세우기 및 증명에 대한 요구를 아예 비틀어버리는 자세.
외모, 연주, 작곡 등 다 잘해야 살아남는 대중음악 산업의 변두리에서 대중음악(인디도 여전히 대중음악이죠)으로 살아남으려 그냥 자기가 꽂힌 걸, 할 수 있는 걸 한 음악가들이 있고, 그게 ‘홍대 감성’이 되었음.

주류와 조금 다르기 때문에 정형적이지 않고 모자라보이지만,
그런데도 이상하게 끌리는 것이 특징.

이거 완전 바밍타이거잖아요.

이번 앨범의 전체 프로듀싱을 바밍타이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산얀에게 맡기며, 산얀이 지금껏 만들어온 바밍타이거의 DNA가 알엠과도 어느 정도 공유가 가능함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트랙이 이 ‘Groin’이라고 봅니다. 전반전에도 분노를 해갈하려 많은 욕설을 했지만, 영어였기 때문에 마치 ‘외국 팝’처럼 포징(posing)한 채였고 그래서 한국어가 모국어인 저에겐 덜 직접적으로 들렸어요. 반대로 한국어 가사로 말하는 이 곡은 좀 더 노골적인 인상을 주고요. 그 직접적 언사를 완곡히 만들고자 그나마의 쿠션으로 유머를 섞은 것이 다른 트랙들보다 이 곡을 좀 더 쿼키(quirky)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분위기가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홍대 감성’의 후예, 20세기 서브컬처와 B급 유머를 섞는 바밍 타이거식 작법과, 그의 친구격인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정점에 있다시피한) 알엠의 교집합이라 느껴졌습니다. 한국의 홍대신에서 출발한, 자조적이면서도 발산적인 에너지가 있는 재미있는 음악이요. 덧붙이면 평소 ‘자컨’이나 SNS를 보면 알엠 본인도 개그 욕심이 상당한 청년 같은데요 ㅎㅎ 그간의 작업물 속 그의 가사관은 좋든 싫든 진지하고 비장한 자세일 때가 많았다고 회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곡처럼 가벼운 농담으로 소화한 것도 색달라 좋았습니다.

7. Heaven

몽환적인 무드의 슈게이징 혹은 드림팝 곡입니다. 새로우면서도 또 어떤 면에선 알엠의 전작 ‘mono.’의 앰비언트한 무드를 연상시키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인디한 사운드로 구성한 이 앨범에도 잘 어울리고요. 멜로디와 그걸 밑에서 받치고 있는 코드의 키(key)가 Bb메이저 - Bb마이너 - Bb메이저로 모호하게 변했다가 돌아오는 것이 넘실넘실 하는 물결 같이 들려요. 내향적인 곡의 분위기 때문에 제겐 넓은 바다보다는 욕조물처럼 느껴졌어요.

가사를 볼까요. 일반적으로 대중음악 가사에 Heaven은 이상적인 곳, 최상의 사랑, 고양감의 극치 등의 비유로 쓰입니다. 이 곡에서 Heaven은 화자의 행복을 상징하지만, 2인칭으로 부르는 상대방에게 그 행복을 앗아가라고 말합니다. 화자는 상대방이 자신의 불행을 바란다는 걸 이미 알고 있으며, 저항하지 않고 그냥 나를 파멸시키라고 먼저 말합니다. 극도의 체념이지만 반대로 ‘싸우지 않기를 나 스스로 결정함’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을 하는 모습입니다.

알엠은 과거 방탄소년단의 곡에서도 이런 Give in 하는 가사를 종종 쓰곤 했어요. (Give in은 ‘포기하다’라는 뜻이긴 한데, Give up보다는 수동적으로 포기한다는 뜻의 표현입니다. 그나마 비슷한 한국말을 찾으면 ‘항복한다’고 번역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Best of Me’에 쓴 “날 쥐고 있는 너, 난 너의 칼에 입맞춰” 같은 가사를 떠올려보면, 화자는 대상(여기에서는 사랑하는 사람 혹은 팬)에게 내 운명의 처분을 맡긴다는 자세를 취합니다. 흔히 발산적이고 정복적인 태도를 취하는 힙합 가사에서 이런 알엠의 자세는 그 자체로 돋보이는 면이 있었습니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에너지 넘치는 사랑 노래 속에서는 결정적인 로맨틱함을 만들거나, 혹은 사운드나 퍼포먼스가 넘쳐흐를 때 가사로 조금이나마 수렴하며 갈무리를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Heaven의 가사는 거기에서 한 번을 더 꼬아, 상대가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아니라 할지라도, 당신이 원한다면 나를 무너뜨리라고 자신의 의지로 청하고 있습니다. 슈게이징 사운드의 비관적인 무드를 더욱 강조하는 가사입니다.

8. LOST!

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입니다. 저는 앨범 전체를 들어보기 전에 뮤직비디오로 LOST!를 먼저 들어봤는데요. 처음 들으며 했던 생각은… ‘이 앨범을 일반적인 케이팝으로 마케팅할 생각이 전혀 없구나’ 였습니다. ㅎㅎ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이 곡을 앨범의 타이틀로 정한 의도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아무리 그래도 팝 앨범인데, 음반을 팔려고 정하는 곡이 타이틀 곡인데’라는 생각에 갇혀있는 걸까요? ㅎㅎ 다른 곡들에 비하면 ‘아-아-아-아-아-아-’ 하는 부분이 후킹한 것도 같고, 그나마 멜로디컬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저는 이 곡이 전체 앨범에서 가장 어려운 곡 같거든요. 다이내믹이 복잡한 것도 그렇고요. 전주부터 한번 들어보세요, 가스펠 합창인척 하고 있는데 작은 소리들이 불협을 만들어요. 노래하는 목소리 중에도 있고 악기 중에도 있어요. 토너가 맛이 가서 이미지 한 쪽에 줄 하나가 찌익 그어지는 프린터의 인쇄물 같이요.

저는 이 앨범의 특징 중에 소울풀한 그루비함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타이틀인 이 곡은 의도적으로 그 그루브에서 알엠을 떼어버리려는 것 같아요. 노래 전체를 끌어나가는 쟌쟌쟌쟌 하는 4박의 건반은 딱히 그루비함이 느껴지지 않죠. 앞선 트랙 Heaven의 가사 “Come ruin my vibe” 처럼요. 일단 박자의 강세가 일반적인 흑인 음악에서 비롯된 팝처럼 2와 4(백비트라고도 해요)에 있지 않고, 1과 3에 있어요. 예전에 제가 뉴진스의 ‘Attention’ 분석을 할 때 썼던 예시이기도 한데요. 한 마디가 4박이라고 할 때, 어르신들은 1과 3에 박수를, 젊은이들은 2와 4에 박수를 치잖아요? 대부분 팝은 2와 4, 그러니까 드럼으로 칠 때 스네어의 챡!하는 얇은 소리를 강세로 세어요. 근데 이 곡은 베이스드럼의 둥,하는 소리에 강세를 뒀어요. 그래서 곡이 훨씬 더 딱딱하고 스퀘어하게 들려요. 부르는 사람이 비트에 부드럽게 올라타는 게 아니라 딱딱한 형태 안에 갇히게 만들어져있어요. 특히 전주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곡이 시작할 때부터 뒤에 나오는 16박으로 쪼개지는 신스가 가장 신경 쓰여요. 이런 빠른 박자의 건반 연주를 리얼타임으로 지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아마도 미디로 찍고 소스를 만들어서 루프로 돌린 것 같은데, 들을 때 그게 굉장히 도드라져요. 이 앞과 뒤에 펼쳐진 트랙들의 그루비함, 아날로그스러움, 리얼한 연주라는 패턴에서 벗어나있어요. 한편 곡의 믹싱은 앞뒤 곡들처럼 20세기식 레트로함을 계속 살리고 있고요.

오베 페리(Aube Perrie)가 감독한 뮤직비디오는 미국식 옛날 텔레비전 토크쇼와 오피스를 배경으로 했어요. 레트로 텔레비전 토크쇼 세팅 때문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Tyler the Creator)의 유명한 뮤직비디오 ‘EARFQUAKE’가 연상 되기도 했어요. 저는 ‘LOST!’의 뮤직비디오가 고약한 옛날 게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음악에서 들리는 16박 신스도 좀 옛날 게임 같고요, 특히 기울은 채 횡으로 이동하는 장면은 일부러 의도한 걸까 싶을 정도예요. 게임기 안에서 이리저리 정신 없이 튕겨다니는 핀볼처럼 알엠도 분주하게 어수선한 오피스 건물 안을 헤맵니다. 알엠과 함께 다니는 4명은 같은 이름표를 단 것으로 보아 알엠 본인의 다른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았어요. 인사이드아웃의 감정들처럼요. 뮤직비디오 종반에는 4명의 친구들, 혹은 알엠의 분신들이 알엠을 상층의 방송 무대로 밀어올려줍니다. 방탄소년단 작품 속에서도 페르소나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려 했던 그였음을 생각했을 때, 뮤직비디오에서 알엠 본인이 연기한 것이 방송과 대중들에 보여지는 페르소나 역할이었나 하고 짐작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던 것에 기억에 남아요.

9. Around the world in a day (feat. Moses Sumney)

알앤비 뮤지션 모세스 섬니(Moses Sumney)가 피처링한 곡입니다. 앨범 후반전을 설명하며 전반전보다 훨씬 화성적으로 안정 되었고 분위기도 밝아졌다고 적었는데요, 이 곡은 그 정점에 있어요. 아름다운 화성과 다정한 기타 베이스 연주, 모세스 섬니의 섬세한 보컬 런이 소울풀한 분위기로 주의를 집중 시켜줍니다. 특히 고음 가성의 정확함에서는 전성기 때 디앤젤로(D’Angelo)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그러다 1분 34초 쯤부터 괴상하게 디스토션을 건 기타가 뽀직뽀직 하며 조금씩 균열이 온다는 힌트를 줍니다. 그리고 마침내 2분 18초에 시원한 기타드럼 연주와 함께 알엠의 보컬이 터지듯 들어옵니다. 수문을 완전히 열어 쏟아져들어오는 댐의 물처럼 곡 전체의 표정이 완전히 바뀌어요. 억눌려있고 혼란스러웠던 앨범 전체를 보았을 때 가장 명료하고 시원한 해소의 순간입니다.

유튜브 케이팝 리뷰 채널 ReacttotheK에서 이 앨범을 리뷰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가 떠오른다는 얘길 하셨던데, 저도 딱 그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제목에 “a day”가 겹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곡도 곡이 반절이 넘고서야 갑자기 리듬이 바뀌면서 다른 곡이 되거든요. 케이팝에도 같은 곡 안에서 이렇게 리듬이나 장르가 격렬하게 바뀌는 곡들은 많이 있지만요, 이 곡은 완전한 케이팝 댄스 뮤직의 느낌과는 거리가 있어서인지 비틀즈의 곡이 스펙트럼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져요.

포스트코러스에 가서는 벼른 것처럼 드디어 한국어 가사가 등장합니다. 음악 진행의 장대함이나 타이밍 때문에 이 구간의 가사는 앨범 전체에서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정점의 말처럼 들립니다.

내가 또 잠에 든다면 나를 좀 때려줘
속이 좀 안좋아 그래 그냥 좀 내려줘
길을 잃고 난 뒤 경치가 더 beautiful
내 꼴 마치 꼭 발견되길 소원하는 분실물
길을 잃은 우리들 we ain't look so pitiful
이제야 그 미소 띄며 치켜들어 중지를
Yeah, all the past, the present, I'ma pass, then give it to you
난 고장난 내가 좋아 bitch, that's the shit

멀리 돌아왔지만 1집 [Indigo]의 결론과 비로소 만나는 지점입니다. 길을 잃은 ‘우리들’이라고 큰 호명을 하는 것에서 그가 방탄소년단으로서 팬들에게 꾸준히 송신해온 메시지들과도 자연스럽게 중첩됩니다. 이 앞의 트랙들까지 그가 표현한 자신은 길을 잃었고 고장나있는 상태, wrong person인 상태이지만, 그래도 괜찮고 오히려 그래서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알엠과 같이 자신이 wrong person, 현재와 불화한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이 부분이 참 위로가 될 것 같아요.

10. ㅠㅠ(credit roll)

앨범의 실질적인 마지막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Around the world in a day’로 화려한 절정을 보여주고 단출한 끝마무리를 내고 있습니다. 아웃트로 같은 제목도 그렇고요. 최근 몇 년 간 알엠의 큰 관심사 중 하나가 영화였던 것 같은데요 (그의 ‘헤어질 결심’ 사랑은 특히 유명하죠), 뮤직비디오 뿐만 아니라 앨범도 시네마틱한 구성을 염두에 둔 것 같아요. ‘영화가 끝나고 나면 크레딧을 보러 극장에 계속 앉아있나요?’ 하고 묻는 가사에서 잘 드러납니다.

저는 영화도 영화지만, 뚱한 이미지의 레트로 신스 때문인지 고전 8비트 게임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게임도 엔딩까지 다 깨고 나면 크레딧롤이 올라가잖아요. 새벽까지 열심히 플레이 해서 게임 다 깨고서 혼자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거 볼 때 기분이 참 복합적이거든요. 엄청 열중한 끝에 맞는 결말이라 후련하기도 하고, 새벽까지 공부 안 하고 게임이나 했구나 싶어서 죄책감도 들고,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시간에 깨어있는 달콤한 쓸쓸함도 느껴지고요. 이 곡에서도 그런 다층적인 감정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 곡을 사람 표정으로 하면 머쓱한 웃음 같아요. 앨범 전체에 걸쳐 욕도 많이 하고, 분노도 발산하고, 사랑했던 사람에게 저주도 퍼부어봤잖아요. 하지만 그걸로 끝내고 싶지는 않은 것, 두서 없는 발산 그 자체로 두지 않고 결국은 시간을 내준 청자, 관객들에게 감상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끝인사를 하고 마는 것, 그게 대중음악가 알엠의 중요한 특징이 아닌가 싶어요. 팬들과 어울리며 성장해온 아이돌이자 아티스트인 알엠이 그 팬들에게 이런 나(당사자는 때로 wrong person이라 느끼기까지 하는)를 견뎌주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보내는 인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겸양이 사랑스러운 아티스트라고 느껴요. ‘ㅠㅠ’ 라는 이모티콘 제목도 귀여웠어요.

11. Come Back To Me

이 곡은 처음에 싱글 발매 되었을 때 이미 리뷰를 하긴 했는데요, 이젠 앨범의 맥락에 포함되며 다른 의미가 덧대어진 것이 보여 조금 더 적어봅니다.

10번 트랙 ㅠㅠ(credit roll)로 앨범의 서사는 다 마무리가 되었는데, 그 맨 뒤에 이 한 곡을 툭 넣었어요. 근데 그 곡이 앨범 전체에서 러닝 타임이 가장 길어요. 한바탕 난리(!)는 칠대로 다 쳐놓고 조심스럽게 ‘돌아와줘’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아요. 미련이 그득한데, 풀어내는 방식이 아름다워 그게 전혀 싫지 않아요. 이런 맥락에서 들을 때 단독으로 들을 때와 비교해 좀 더 복잡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교환앨범’ 영상에서 알엠이 밝힌 바에 의하면 다른 수록곡들이 너무 딥한 것 같다 느껴 오혁에게 부탁해 따로 받은 곡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앨범 전체의 서사적 흐름에서는 동떨어져 별개의 곡 같지만, 레트로 소울이나 AOR스러운 톤이 앨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그러려니’ 하고 듣게 됩니다. 어찌보면 이 곡을 부르기 위해 앞선 해갈들이 필요했던 걸까 생각하게도 되고요.

알엠은 그간 여러 인터뷰를 통해 환원에 대해 자주 말했어요. ‘방황하면 안정하고 싶고, 안정하면 방황하고 싶’어진다고요. 방탄소년단은 한국 대중음악사상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팀 중 하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 되었어요. 며칠 전 제이콜(J. Cole)이 티 그리즐리(Tee Grizzley)의 곡 ‘Blow for Blow’에 피처링한 파트에서 아예 방탄소년단(BTS)을 ‘앨범 많이 파는 아티스트의 대명사’로 언급했을 정도로요. 반박의 여지가 없는 예시죠. 그럼에도 알엠은 이 방향이 정말 맞는지, 그렇게 얻은 영광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끊임 없이 질문해요. 산업의 내부 그 안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숱한 사정들이 있겠죠. 대중은 물론 팬들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빛 이면의 그림자는 그가 이 앨범을 통해 토해낸 감정의 종류로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말하는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기까지, 알엠에게는 1번부터 10번 트랙까지의 분노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게 꽤나 괴로워보여서 인간적으로 딱하단 마음도 들고, 동시에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승화시켜 보고 들을 만한 작품으로 만들어주어 리스너로서 고맙다는 생각도 듭니다. 산얀이 SSENSE와의 인터뷰에서 팀 알엠 단톡방의 공지였다고 한 그 문장처럼, ‘알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겠죠.

앨범을 한 바퀴 다 돌았습니다. 휴, 격정적이면서도 즐거운 라이드였어요. 알엠은 ‘교환앨범’ 영상에서 말하길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해야 아티스트적인 생명 혹은 의지가 늘어난다고 판단했다. 나도 나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이라고 했어요. 군 입대 직전이라는 촉박한 기간 내에 타임어택처럼 만들 수밖에 없었지만, 서사적으로 탄탄하고, 음악적으로도 흥미로우며,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배경과 경험의 아티스트들끼리의 협업이 잘 이루어졌고, 음악 외적인 화보나 뮤직비디오 등까지 완결적으로 만들어진, 좋은 앨범이었습니다.

리뷰 1편에 저는 이 앨범이 1집 [Indigo]와 비교했을 때 ‘액자 밖으로 뻗쳐나간’ 작품이라는 비유를 했어요. 1집과 2집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특징은 그의 동시대 음악 및 대중예술을 넓고 깊게 읽는 성실한 지성과 기민한 감각, 그리고 적절한 조력자들을 선정하고 자기 세계로 초청해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능력입니다. (리뷰 1편에 이중 후자 ‘플랫폼으로서의 알엠’만이 강조되는 것에 우려도 적었었지요) 이 협력을 가능하게 한 지적인 플레이가 인상적이에요. 그래서 알엠의 2집 [RPWP]은 지적인 방식으로 야성을 보여주고자 한 시도였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7월에 리뷰의 1편을 보내며 만든 이의 의도를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고 적었는데, 그 사이에 [RPWP]의 메이킹을 담은 다큐멘터리 ‘Right Place, Wrong Person’의 부산 국제 영화제 초청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리뷰에 말한 캐논(canon)이 잔뜩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아보이죠? ㅎㅎ 의도를 추측한 부분들은 그때까지만 유효하겠지만, 그래도 좋다는 마음으로 즐거이 쓴 리뷰입니다. 여러분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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