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 첫 솔로 앨범 [Happy]의 선공개곡 'I'll Be There' 들어보셨나요? 록밴드 편성으로 만들어진 신나는 노래였지요. 지금은 [Happy] 앨범 전체가 다 공개 되었는데요, 'I'll Be There'을 선공개로 고른 게 적절하다 싶을 만큼, 어렵지 않고 '해피'한 음악으로 가득 차있는 음반입니다. 오늘은 'I'll Be There'의 소개글에 써있던 '로커빌리' 장르, 그리고 케이팝 곡을 장르로 분류하는 일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음원 사이트의 곡 소개를 읽어보니 'I'll Be There'를 "로큰롤(Rock and Roll) 장르 초창기 스타일 중 하나인 로커빌리(Rockabilly, 로큰롤과 컨트리 음악을 혼합한 음악) 사운드의 곡"이라고 소개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들어보고 '로커빌리보다는 팝 록인데?' 하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매체들은 어떻게 들었는지 찾아봤는데요. 대부분 레이블에서 제공한 보도자료대로 로커빌리라고 소개했지만, 저는 NME에서 선공개 싱글 공개 당시 내놓은 기사의 내용에 더 공감했어요. 한국어로 번역해서 옮기면 이렇습니다. ''I'll Be There'은 로커빌리 장르에 오마주를 표하는 곡으로, 팝 록과 트로트의 요소를 섞었다.' ("Titled ‘I’ll Be There’, the track pays homage to the rockabilly genre, mixed with elements of pop rock and trot.) 저는 이 문장이 가장 노래의 실제 사운드에 근접한 설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로커빌리는 'I'll Be There'의 소개글에처럼 로큰롤 장르 초창기 스타일 중에 하나입니다. 누군가 로커빌리 음악이 뭐냐, 어떤 사운드냐고 물으면, 저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폼 잡으면서 부르는 딩가딩가 신나는 그 음악'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요?

Elvis Presley - Blue Suede Shoes  

로커빌리가 로큰롤과 컨트리의 혼합이라는 평은 저도 딱히 반박하지 않아요. 하지만 나온 최종 결과물로서의 'I'll Be There'를 설명하라면 저는 신나는 팝 록이지, 로커빌리라는 라벨을 굳이 붙일 것 같지는 않아요. 블루스의 부기우기가 좀 더 격정적인 틴에이저들의 댄스 음악으로 변해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로커빌리에는 블루스의 색채가 아주 많이 남아있었어요. 여기에 미국 백인 노동 계급의 음악이었던 포크나 블루그래스(지금은 컨트리로 이어진)가 가미됐고요. 'I'll Be There'은 부기우기나 블루스 스케일과 코드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고, 오히려 그 단순함과 신남은 팝 펑크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방탄소년단이 불렀던 노래 중에 꼽자면 '달려라 방탄'에서 쟁반노래방 퀴즈로 불렀던 '검정고무신'은 로커빌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좌우지 장지지지' 하고 시작하는 저 기타 인트로가 딱 그 삘이잖아요.

로커빌리가 워낙 오래된 장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로커빌리는 미국의 유스 컬처, 곧 지금의 팝 문화라는 것을 폭발적으로 태동시킨 아이코닉한 장르이기 때문에, 후대에도 리바이벌 사조가 있을 정도로 거의 원전 그대로 사랑을 받아왔어요. 1978년 개봉한 영화 [그리스(Grease)]가 당대로선 레트로였던 1950년대의 로커빌리 문화를 묘사했고, 80년대에는 네오-로커빌리 바람이 불기도 했거든요. 그 시절 대표적인 Stray Cats의 'Rock This Town'은 1981년에 나온 노래입니다. 그때 기준으로 레트로였죠. 지금의 우리에겐 1980년대의 모든 것이 레트로가 되었지만요.

문샤이너스 - 푸른 밤의 BEAT! (Live)  

며칠 전에도 방탄소년단 뷔의 솔로곡들을 짚어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뷔가 겨울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걸맞는 노래들을 여러 번 내왔잖아요. 올해에도 재즈 영향을 받은 팝 'Winter Ahead (with 박효신)'와 캐롤 클래식 'White Christmas (feat. Bing Crosby)'를 준비했더라고요. 12월생이라 그런가, 뷔는 겨울의 낭만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ㅎㅎ 아무튼, 팝 가수가 이러한 곡들을 낼 때에, 이것을 '현재의 재즈 장르'라고 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해요.

몇 년 전 스타덤에 오른 아이슬란드 가수 레이베이 (Laufey)가 정확히 이런 논란(?) 속에 있었어요. 레이베이 본인은 자기 음악을 그냥 재즈라고 칭하는데, 평단이나 다른 재즈 뮤지션들은 '글쎄' 하는 반응이었거든요. 그의 음악에 재즈의 영향이 없지는 않아요. 심지어 아주 많아요. 하지만 이것이 '현재의 재즈'이냐 하면, 그렇게 부르기엔 팝만큼 주류가 아닐 뿐이지 재즈 신은 아주 건재하고, 그곳에서 '현재의 재즈'를 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어요. 재즈 뮤지션이자 유튜버인 아담 닐리(Adam Neely)는 축음기에서 흘러나올 것 같은 분위기 있는 옛날 영화 음악의 음악과 닮았다고 해서 '미드 센트리 팝'이라고 부르는 게 적합해보인다고 하기도 했어요. 재즈가 곧 팝 뮤직이었던 시절의 음악이죠. 뷔도 비슷한 감성을 다루기 때문에 뷔가 겨울에 내는 음악도 재즈의 영향을 받은 팝, 또는 미드 센트리 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누군가의 볼멘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로커빌리/재즈 가 별거냐? 비슷비슷한 음악 갖고 유난이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없지는 않잖아요. 힙합 아이돌, 밴드 아이돌처럼 주류 아닌 장르에 중심을 두고 시작한 아이돌들이 늘 듣는 소리들이죠. '아이돌 팝 가수는 이 장르의 진정한 뮤지션으로 인정할 수 없어' 라는 평가 말이에요.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팝 가수가 장르 음악 좀 하면 듣는 뻔한 소리들이 있잖아요. 상업적이라 진정성이 없다는둥, 소녀팬들이나 좋아하는 가수가 무슨 뮤지션이냐는둥... 저도 그런 말에 싸우며(!) 자라난 소녀팬 출신의 어른이기 때문에, 마초적인 장르팬들이 하는 게이트키핑적 발언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해당 장르의 '현재'를 지키고 있는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외부에서 등장한 팝 가수가 갑자기 내 준거 장르의 대표자가 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을 거예요. 위에 말한 현대의 재즈 신과 레이베이의 관계처럼요. 내부에서 자라거나 활동하지 않은 사람이 신 전체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 또 현재의 재즈 신에 관심 없던 사람이 별안간 '레이베이가 침체에 빠진 재즈 신을 구했다'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당혹스러울 것 같긴 하거든요. 그런 게 마치 문화적인 전유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레이베이를 좋아하는 젊은 팬들 중에는 기존 재즈 신이나 평단의 저런 반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재즈가 이제는 클래식이나 한국의 국악처럼 도제로 긴 시간을 수련하거나 대학 같은 곳에서 배워야 하는 엘리트의 장르가 됐다는 인상이 있는데, 대중적 인기를 끄는 가수를 재즈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그런 엘리트의 게이트키핑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다시 'I'll Be There'로 돌아와봅시다. 빅히트 뮤직(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은 왜 이 곡의 보도 자료에 마이너한 장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을까요? 직접 묻지 않았으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는 과거 뉴스레터 시즌1에 이 이유를 추측해본적이 있어요. '사람들이 케이팝에 가지는 편견과는 달리, 우리는 이만큼 진지하게 음악 하고 있다'는 의도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고요. 곡 설명에 들어가는 장르 설명을 비교적 상세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보였어요. 아이돌 퍼포머들이 전면에 서는 케이팝은 '애들이나 듣는 음악'이라는 차별적 시선을 오래도록 받아왔잖아요. 그래서 케이팝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학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렇지만 케이팝의 보도 자료 혹은 라이너 노트 속에서 지독하게 틀리게(다르게 아니고 진짜로 틀린 거요) 쓰여온 장르 용어들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신스팝'이 있습니다. 2세대 아이돌이 활동한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어디서 나 모르게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스(신디사이저)가 들어가면 신스팝'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거든요. 이건 마치... 닭이 한 마리 들어가면 닭을 튀겼든 쪘든 그 요리를 무조건 '닭한마리'라고 부르는 거나 마찬가지의 오답이죠. 신스팝은 본래 80년대에 신디사이저가 보급 되면서 이 악기를 적극적으로 쓰던 락밴드들의 음악을 부르던 말이라서, 2000년대에서 2010년대의 케이팝 댄스곡들과는 거의 아무런 상관도 없었어요. (오히려 지금은 80년대의 유행이 돌아와서, 아하(A-ha)의 'Take On Me'를 닮은 위켄드(The Weeknd)의 'Blinding Lights'가 사랑을 받고, 또 'Blinding Lights'를 닮은 수많은 노래들이 태어나면서 진짜 신스팝이라고 분류해도 될 케이팝 곡들이 많이 생겼어요.

12년 전에도 고통 받고 있던 미묘 평론가님...  

'신스팝' 단어 오용의 사례에서 보듯, 대중 음악의 언어는 불분명한 것이 일단 몇 번 쓰이면 미디어를 타고 여러 번 복제 되며 널리 퍼져나가는 경우가 왕왕 있어요. 다행히 신스팝은 위에 말했듯 찐으로 신스팝의 유행이 돌아오면서 어느 정도 정정이 된 것 같긴 한데요, 불행히도 비슷한 길을 떠나 지금까지 그다지 정정되지 않은 '시티팝' 같은 단어도 있어요. ㅋㅋㅋ

위에서 말한 케이팝 보도 자료에 장르를 상세히 언급하는 이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자면, '있어보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조금 생소한 장르를 언급하면서 그 장르를 잘 모르는 대중을 상대로 정보 우위를 점하고, 자신들이 이런 마이너한 것도 디깅해왔다 하고 보여주고 싶은 걸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럴 때에 대부분 만든 사람들의 편을 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ㅎㅎ '마이너한 걸 디깅해왔으면 자랑하고 싶을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편이긴 한데요. 그건 보도 자료에서 언급하는 장르의 분류에 제가 동의할 수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ㅎㅎ 음악을 잘 알리고 싶어서 적는 용어라면 가급적 정확하게 적어야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보면 저도, 내가 먼저 들어봤고 지식이 있다는 이유로 잔소리 하고 싶어하는 꼰대 평론가처럼 보일 수도 있겠네요. ㅋㅋㅋ

장르를 정말 그렇게 엄밀히 구분해야 하는 걸까요? 어차피 대중음악의 장르란 마케팅의 도구일 뿐인데 좀 틀린다고 그렇게 큰일인 걸까요?

장르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중 문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세기와 21세기 초에는 문화적인 클러스터를 만드는 역할을 한 것도 있어요. 1960년대 영국에서 모드족과 락커들이 각자의 장르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겨뤘듯이요. 특히 미국의 경우 지역이나 인종, 연령에 따라 선호하는 장르가 있고, 평생 한 장르만 사랑하는 매니아들도 많았기 때문에, 또 장르라는 라벨을 보고 음악을 찾아듣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분류가 유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음반 가게에 가서 록 장르 매대 앞에 서서 음악을 고르는 게 아니라, 음원 사이트에 장르 말고도 무드나 bpm 등 다양한 분류법으로 묶인 플레이리스트를 들어요. 뮤지션들 역시 한 장르를 고집하기보다 과거의 여러 장르들을 자기 방식으로 소화해 내놓는 사람들이 많고요. 한 개 장르 아래 그 이름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라는 무한대의 음악 도서관을 쓰는 이상 여러 종류의 음악에 노출될 수 밖에 없어요.

또, 음악의 장르가 그 동안 단순히 음악적인 분류였을 뿐만 아니라, 출신이나 인종의 차별과 함께 얽혀있는 분류였던 점도 장르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을 아쉽게만 보지 않을 이유이기도 해요. 캐나다의 음악 전문 유튜버이자 팟캐스터인 노아 르페브르(Noah Lefevre)는 대중음악이 레코드판 기술과 함께 경제적으로 대중이 향유 가능한 것이 되기 시작한 시기 미국은 여전히 인종 분리주의 국가였고, 흑인이 만들고 흑인이 듣는 음악을 레이스 뮤직(Race music)이라고 부르며 인종차별적인 장르명을 붙였던 것을 지적했습니다. 지금이야 말은 바뀌었다지만, 그래미 시상식에서 흑인 팝 가수는 고집스럽게 알앤비 장르로, 백인 알앤비 가수는 고집스럽게 팝 장르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 지금도 이때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지요.

케이팝 역시, 서구권에서는 '한국 출신 한국 팝 가수'가 하는 모든 음악을 케이팝의 카테고리에 묶어버리고 있죠. 알엠은 엘 파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자부심을 갖는 프리미엄 라벨'이라고 하기도 했지만, 그건 당사자니까 할 수 있는 프라이드의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의 인터뷰가 훌륭했던 것과는 별개로, 저는 여전히 서구 주류의 차별적인 자세를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보도 자료에 장르 좀 달리 적었다고 하늘이 쪼개질 일은 없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써온 장르 용어는 앞으로 더욱 희미해질 거고요.

그럼에도 저는 우리에게 지금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대중음악을 되도록 정확한 (공동으로 합의한 사실에 근접한) 언어로 부르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이 있습니다. 좋아해서 그래요. ㅎㅎ 그러니까 이런 레터를 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