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랜디 서입니다. 이번 달 BPD 뉴스레터에서는 방탄소년단 RM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Right Place, Wrong Person] 선공개곡 ‘Come back to me’을 들으며 느낀 첫인상을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유려한 뮤직비디오로도 화제가 되고 있지만 저는 오늘 음악에만 집중해보겠습니다.

🎸 낭만적인 “어른”의 도시 음악, AOR (a.k.a. 요트 락) 그리고 시티팝

크레딧을 살펴볼까요. 작곡과 편곡으로 밴드 혁오의 오혁, 그리고 기타와 베이스 연주에 대만 밴드 선셋 롤러코스터의 Kuo가 보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미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요. 혁오의 ‘Help’를 선셋 롤러코스터가 리메이크 한 적도 있고, 선셋 롤러코스터의 ‘CANDLELIGHT’에 혁오가 피처링 하기도 했어요. 2023년 선셋 롤러코스터의 내한 공연 때 RM이 백스테이지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했지요. ‘Come back to me’를 들으며 세 뮤지션이 무엇을 공통점으로 두고 작업했을까 생각해보면, 20세기 AOR 장르의 쓸쓸하면서 낭만적인 무드를 구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추측 됩니다.

AOR(Adult-Oriented Rock 또는 Album-Oriented Rock의 줄임말)은 60년대 말부터 미국의 AOR 라디오 채널들이 틀어주던 일명 “어른 취향” 락 음악을 말해요. 청년 세대가 좋아하는 에너제틱한 노래들에 비해 여유로운 취향이 강조되는 음악들요. 당대의 널리 알려진 “어른 취향” 음악 소울이나 스무스 재즈 장르의 낭만적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이 시기 이미 ‘백인 음악’으로 분류 되던 락이 ‘흑인 음악’인 소울과 재즈, 알앤비에 또 영향을 받아 변화하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AOR 중 특히 영미권에서 주류를 이룬 사운드를 ‘요트 락’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요. ‘요트’라는 키워드에서 예상되듯 장르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백인 중상류층의 여유로움 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퍼렐 윌리엄스가 [VIRGINIA: Black Yacht Rock Vol. 1 City of Limitless Access]이라는 제목의 새 앨범을 무료 공개 했는데요, 요트 락에서 흑인 음악의 뿌리를 찾는 시도일까 하는 제 나름의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워낙 조용하게 발매 되기도 했고, 현재 퍼렐 윌리엄스를 둘러싼 논란이 있어서인지 반응이 뜨겁지는 않더라고요.

• 퍼렐 윌리엄스는 채드 휴고와 함께 오랜 시간 더 넵튠스라는 이름의 프로듀싱 듀오로 활동했는데, 최근 휴고가 윌리엄스를 고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윌리엄스가 더 넵튠스의 상표를 등록하며 휴고의 이름을 부정하게 빼버렸다고 합니다.
• 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심각한 국제 문제로 떠오른 현재, 퍼렐 윌리엄스가 2018년 이스라엘군의 모금 행사에 참여한 사실도 다시 불려나왔습니다. 하이브도 하이브 아메리카의 CEO 스쿠터 브라운 등이 오랜 시간 이스라엘의 시온주의를 옹호해온 사실 때문에 큰 비판을 받고 있지요. 

AOR은 일본으로 건너가서 버블시대 ‘시티팝’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시티팝을 아예 J-AOR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AOR은 전세계적으로 70년대와 80년대에 가장 크게 흥했는데요, 영미권의 주류 AOR을 각자 나라에서 소화하며 저마다의 지역성을 부어넣은 결과물 중에 하나가 일본의 시티팝입니다. AOR 베이스에 일본인이 좋아하는 가요적 감성(일명 “뽕끼”라 해야 할까요?)을 접붙였다고도 볼 수 있겠어요.

요즘 한국에서는 유빈의 ‘숙녀’로 시작된, 조금 촌스러우면서 그래서 낭만적인 신스 전자음악을 시티팝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뻗어나가게 된 이유는 2000년대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일본 시티팝을 리믹스한 전자음악 ‘베이퍼 웨이브’가 인기를 얻었기 때문일 거라 추측합니다. 베이퍼 웨이브의 주재료가 시티팝이었기 때문에 2010년대에 베이퍼 웨이브를 모방해서 만든 한국 가요곡들도 그냥 대충 시티팝이라고 부르게 된 것 같아요. 2021년 제가 유키카의 노래를 리뷰하며 한국의 시티팝에 대해 쓴 글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선셋 롤러코스터는 대만 밴드이지만, 이들이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은 AOR이나 70년대 일본 시티팝과 비슷해보입니다. 도시인의 공허함을 아름다운 낭만으로 덧칠하기 위해 20세기의 여러 가지 근사한 “어른 취향” 사운드를 불러온다는 점에서요. 조금만 들어봐도 소울, 소프트락, 알앤비, 포크, 보사노바 등 여러 가지가 들립니다. ‘Come back to me’ 역시 이런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셋 롤러코스터의 Kuo에게 연주를 맡겼을 수도 있겠죠.

참고로 공식 곡 소개에는 ‘인디 팝’이라고 쓰여있는데요. 저는 ‘인디’는 음악을 분류하는 장르의 이름표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인디(인디펜던트)는 산업 내에서 음악을 생산하는 방식의 하나지, 이 방식이 어떤 대표 사운드나 지역성을 가진 건 아니니까요.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을 전부 ‘인디’이라고 묶기엔 저마다 하는 게 너무 달라요. 인디 신이야 말로 주류 아닌 다양한 음악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잖아요.

다만 대중적인 인식에서 ‘인디’라고 호명할 때 쉬이 떠올리는 어떤 요소들이 있을 수는 있겠죠. RM의 ‘Come back to me’는 생산된 방식이나 홍보 되는 방식이 인디는 아니고, 요즘 한국에서 ‘인디’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런 느낌들, 캐치하고 화려한 아이돌 댄스 팝이 아닌 다른 음악…을 칭한 게 아닐까 짐작합니다. (사실 모르겠어요!😂 ‘인디’를 장르로 부르면 이렇게 저처럼 헷갈려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 시적인 영어 가사

‘Come back to me’의 가사를 볼까요. 화자가 돌아오라 애원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치는 않습니다. 행과 행이 개연성을 물고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 모호함 자체가 빚어내는 분위기가 있어요. RM의 영어 가사가 늘 이런 식이었냐 하면 그렇지는 않았어요. 과거에 쓴 왈레와의 컬래버곡 ‘Change’나 폴아웃보이에 피처링한 ‘Champion (Remix)’를 떠올려보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가사도 잘 썼거든요. 오히려 비슷한 작법을 찾자면 2021년 이이언의 ‘그러지 마’에 피처링한 한국어 버스를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행마다 자연물, 색깔 등 빛의 감각, 그리고 애원의 말을 엮어넣어 적확한 의미보다는 어떠한 분위기를 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저는 2000년대 즐겨 읽었던 송재학 시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자연물, 특히 빛을 활용한 감각적인 시어를 통해 향기처럼 모호하게 표현하고, 읽는 사람 마음 속에서 감상이 알아서 피어나게 하는 방식이요. (최근 소식을 검색해보니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 중 넘버 ‘장롱 안에서' 가사가 송재학의 시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를 차용했다고 하네요. 1분 35초부터)

“세수할 시간도 아까워” 한 줄을 제외하고는 전부 영어로 쓰였습니다. 1집 [Indigo]는 가사에 한국어가 주인 앨범이었는데요, 이번 선공개곡으로 짐작하기로는 2집부터는 여기에 변화를 주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작년에 써클차트에서 케이팝 속 영어 가사 분량을 조사하면서 관련 기사들이 한 차례 쏟아진 적이 있어요. 대체로 2023년 당시 걸그룹의 해외 인기에 주목하며, 인기 걸그룹들이 50% 가까운 분량의 영어 가사를 담는 이유는 그때문일 거라는 분석들이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국제적인 인기를 누리고 미국 무대에 등장한 2017년부터도 꽤 오래 한국어 가사를 고집해온 편이에요. 첫 공식 영어 싱글 ‘Dynamite’가 2020년에서야 등장했고, 여기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예외적 배경까지 있었지요. 

제가 ‘Dynamite’ 발매 당시 뉴스레터를 통해 내보낸 리뷰에 적었듯, 저는 ‘Dynamite’가 방탄소년단의 최고 흥행곡이자 대표곡이 되는 것에 아쉬움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이유는 제가 방탄소년단의 기존 곡들에 담긴 메시지를 꽤 진지하게 들었기 때문일 거예요. 모든 노래에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저는 케이팝에서 자기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플레이어들, 특히 그런 아이돌 당사자들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사람들은 아이돌 창작자의 참여가 그저 대중에게 셀링 포인트 하나를 더 추가하기 위함 정도라고 가벼이 여기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나 저는 아이돌 당사자가 자기 프로젝트에 깊숙이 참여해서 예술적인 성취도 누리고, 커리어 성공에 자기 지분을 주장하는 모습들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더욱 방탄소년단이 이것을 양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따라서 이번 RM의 영어 작사가 한국어 작사를 포기한 것으로 읽히기 보다는, 추후 RM이나 방탄소년단이 영어곡을 낼 때에 작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물꼬를 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입니다. 금요일에 전체 앨범이 발매 되면 그 윤곽이 좀 더 뚜렷해지겠지요.

딱 한 줄 등장하는 한국어 가사는 앞선 문장과 라임을 이루기는 하지만, 영어곡 한 가운데 놓인 것이 앨범의 표제 ‘Right Place, Wrong Person’처럼 혼자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기도 해요. 멀뚱한 외로움을 언어의 교체로 표현해낸 것도 작지만 탁월한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 6분 29초의 긴 고백

전반부의 긴 빌드업을 거쳐 마침내 후렴으로 돌입하면 벅찬 소울 드럼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타임스탬프를 확인해보니 여기까지 오는 데에 1분 50초나 걸렸네요 ㅎㅎㅎ 약간 늘어지는 듯이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드럼과 그 주변으로 쫀쫀하게 달라붙는 베이스, 층층이 쌓이는 보컬, 여전히 이어지는 한가로운 휘파람이 아름답게 몰아칩니다. 후렴이 두 번째로 돌아올 때는 아예 네 마디가 보컬도 없이 쉬어갑니다. 그 다음에 들어오는 후렴이 더 극적으로 들릴 수 있게요. 건반과 금관 애드립이 소리의 윗부분을 빈틈 없이 채워주고 일렉트릭 기타도 들어옵니다. 같은 주제를 반복하며 악기들이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는 듯 들어오고, 분위기는 더욱 고양됩니다. “You are my pain, divine, divine”이라는 가사가 주문처럼 반복 됩니다. 

재즈 클럽이나 CCM 집회 등에 가면 라이브 연주에서 시간을 늘이려 이렇게 후렴을 무한히 변주 반복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속칭 ‘돌린다’고 하지요 ㅋㅋㅋㅋ) 아름다운 음악이 이렇게 반복 되고 훌륭한 연주가 곁들여질 때 드는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자아가 가벼워지고 더 큰 우주와 연결 되는 것 같은 몽롱한 감각이요. 저는 그것이 음악가들이 반복 되는 연주 속에서 무아지경에 빠지는, 인식을 초월하는 그 느낌을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Come back to me’의 6분 29초라는 긴 러닝타임이 2분대 곡이 가득한 요즘 차트에서 유독 튀어보이는 건 분명합니다. 그래서 용기가 있네, 음악에 진심이네 하는 칭찬들도 보이지만, 저는 긴 러닝타임 자체가 상찬 거리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곡의 길이는 늘이거나 자르면 그만이니까요. 다만 이 빌드업과 전개, 감정의 폭발이 듣는 사람을 천천히 데워 음악과 함께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것, 또 그런 경험을 위해 6분 29초가 모두 필요했음을 설득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ome back to me’는 그걸 해내는 곡임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악기들을 쌓고 주제를 반복해서 고양감을 만들어내는 다른 곡으로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제프 버클리의 ‘Lover, You Should’ve Come Over’나 일본 밴드 키린지(キリンジ)의 ‘サイレンの歌(세이렌의 노래)’ 등이 떠오릅니다. 이 곡들도 각각 6분 44초와 5분 33초의 긴 러닝타임을 가졌어요. RM이 SNS을 통해 이 곡들을 추천한 적이 있지 않나요? 아시는 분은 저기 아래 피드백 버튼 눌러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떠오른 레퍼런스를 나열하면 마치 오리지널리티가 없다고 공격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그보다는 음악을 두루두루 사랑하고 싶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노래가 나올 때, 이 노래를 우리 인류에게 이미 주어진 여러 노래의 지도 속 어느 좌표 쯤에 놓으면 좋을까, 천 갈래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음악의 계보 속 어디에 세워두면 어울릴까… 저는 그런 고민을 할 때 즐겁고 행복해요. 그래서 레퍼런스 언급이 악성 행위로 오해 받는 요즘이 울적합니다.